[한경 아르떼 추천 전시⑭]
단군 이래 최고의 화가
김홍도, 사람과 시대
2026.06.11
전시정보
| 전시명 | |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 |
|---|---|
| 전시 기간 | | ~2026.8.2(일) |
| 장소 | |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 |
김홍도 <을묘년화첩> 중 <총석정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김홍도는 서른일곱이 되던 1781년 ‘단원(檀園)’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습니다. 동양화 기본서 <개자원화보>의 밑그림을 그린 이유방의 호를 따온 것입니다. 김홍도는 스승이자 당대에 ‘예원(藝苑)의 총수(總帥)’라는
위상을 지녔던 표암 강세황에게 이를 현판에 걸 기문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흔쾌한 마음으로 붓을 들려던 표암의 뇌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써 줘 봐야 걸 곳도 없다.’
도화서(국가 그림 전담 기관) 소속 화원이었지만 영락한 중인 집안 출신이었던 김홍도는 ‘뜰 원(園)’ 자가 들어간 호가 무색하게 이를 내걸 정원이 딸린 집 한 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표암은 쓸모없는 현판
대신 김홍도가 누구이며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갖춘 화가인지를 담은 <단원기(檀園記)>라는 간략한 전기를 지어 주었습니다. 한국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행적과 작품 세계의 큰 줄기를 알 수 있는 귀한
기록이 무주택자 제자에 대한 스승의 안타까움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다만 글의 머리말을 보면 표암의 눈에 비친 김홍도의 재능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금의 화가들은 각기 한 가지만 잘하고 여러 가지는 잘하지 못하는데, 김군 사능(士能·김홍도의 자)은 우리나라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을 전공하였는데 못하는 것이 없다.
인물·산수·선불·화과·금충·어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묘품(妙品)에 들어 대항할 이가 없다. 인물과 풍속을 모사함에 더욱 뛰어나 공부하는 선비, 장사꾼과 나그네, 규방의 여인과 농부, 누에 치는 여자,
거친 산과 들의 나무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를 곡진하게 그려 어색한 것이 없으니 이것은 옛적에도 없던 솜씨다….” - 강세황 <단원기>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무동>.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서화(書畵)의 대가이자 당대의 평론가였던 표암이 ‘무소불능(無所不能·무엇이든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다)’이라고 극찬했던 단원의 그림 솜씨를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올해 초 재개관한
서화실의 두 번째 주제전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에 맞춰 그의 명작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빛에 취약해 자주 교체해야 하는 서화의 특성을 고려해 분기마다 특색 있는 ‘원포인트 기획전’을 운영하기로 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에 이어 선보인 두 번째 전시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친필과 궁중 채색장식화 등 모두 50건 96점이 관람객과 만나며, 이 가운데 보물은 8건에
달합니다.
전시의 핵심은 단연 서화2실에 마련된 김홍도 주제전입니다. 그의 전성기부터 노년까지 이어진 화업이 펼쳐집니다. 보물인 <단원풍속도첩>에 수록된 25점 가운데 <씨름>, <서당> 등 11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풍속화로 교과서를 통해 익숙하게 접했던 작품들인데, 실제로 마주하면 더욱 생생한 감동을 줍니다. 이를 통해 김홍도가 백성들의 삶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김홍도는 단군 이래 최고의 화가”라며 “진경산수화를 연 겸재 정선이 미술사적 중요도에서는 높지만, 순수한 그림 실력만 놓고 보면 김홍도가
앞선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기로세련계도>와 <총석정도>는 단원의 예술적 역량과 원숙한 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작입니다. 개성 만월대에서 열린 노인들의 합동 잔치를 그린 <기로세련계도>에는 노인 64명과 시종,
구경꾼 등 총 237명이 하나하나 정교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여기에 개성 송악산의 빼어난 산세까지 담아냈습니다. 유 관장은 “산수화와 풍속화가 함께 담긴 작품”이라며
“화가로서의 필력이 최고 경지에 이른 모습을 보여 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총석정도>는 김홍도의 대표작인 <을묘년화첩>의 한 장면으로,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먹의 농담을 조절한 표현과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의 묘사가 절묘합니다.
회화1실에서는 단원과 스승 표암의 우정을 조명합니다. 보물로 지정된 강세황의 <자화상>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옥색 평상복 차림의 그림에는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이름은 조정에 올랐다’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예술가였던 표암은 기로정시(노인을 우대해 실시한
특별 과거)에 장원급제해 예조판서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김홍도의 재능을 알아본 뒤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단원기>에서도 “(김홍도가) 내 문하에서 재능을 드러냈고, 같은 관청에 있으면서 함께 생활했으며, 예술계에서는 지기로
여겼다”라고 적으며 특별한 인연을 기록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1598년 7월 8일 물품 지원을 담당하던 한효순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친필 간찰.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김홍도의 그림 외에도 볼거리는 풍성합니다. 회화3실의 조선시대 궁중 채색장식화에서는 조선 말기 회화에 현대적 감각이 스며들기 시작한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순신의 친필 간찰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됩니다. 노량해전을 약 4개월 앞둔 1598년, 물품 지원을 담당하던 한효순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지난 3월 막을 내린 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당시에는 소장처를 확인하지 못해 출품하지 못했던 작품입니다. 유 관장은 “박물관이 끝까지 추적해 소장가를 설득한 끝에 이번 전시에 선보이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글. 유승목 기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 본 콘텐츠는 한경매거진앤북에서 제공한 콘텐츠입니다.
추천 콘텐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