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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전시소개

[한경 아르떼 추천 전시⑫]
거리와 이해 사이
박신양의 ‘전시쑈’

2026.04.07

전시정보

전시명 |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전시 기간 | ~2026.5.10(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 2관
박신양의 전시쑈:제4의 벽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신양의 전시쑈:제4의 벽' 전시장에서 정령 분장을 한 배우들이 작품 앞에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유승목 기자

‘제4의 벽’은 연극예술을 정의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은 배우와 관객을 철저히 분리합니다. 배우는 이 경계를 사이에 두고 무대 위 세계가 실제라 믿으며 몰입하고, 관객은 그 벽 틈새로 가상의 삶을 관조합니다.

물론 예술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 견고한 원칙을 깨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객체에 머물던 관객을 사건의 주체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예술적 쾌감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데드풀>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영화 속 캐릭터임을 자각하고 스크린 밖 관객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박신양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배우 박신양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 및 '감정의 발견'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박신양은 회화 전시에 연극적 구조를 결합한 한국 최초 '연극적 전시'를 선보입니다.

배우 겸 화가 박신양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박신양의 전시쇼: 제4의 벽> 역시 이런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실험적 접근입니다. 연극 개념을 미술에 대입해 작가와 관람객의 심리적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지난 3월 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전시를 두고 배우로 40여 년, 화가로 10여 년을 보내며 생긴 두 개의 예술적 자아를 충돌시킨 결과라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움을 유발하고 평면적이지 않은 느낌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박신양, ‘투우사 3’, 2017년, oil on canvas, 100F, 162.2×112.1cm

박신양, ‘투우사 3’, 2017년, oil on canvas, 100F, 162.2×112.1cm

전시에는 <당나귀> 연작, <투우사> 연작 등 작가의 대표작 200여 점이 걸렸습니다. 그림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건설 현장에서 쓰는 유로폼 거푸집을 두른 벽면, 정령으로 분장해 전시장을 누비는 15명의 배우들입니다.

이는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하얀 벽에 회화가 정갈하게 걸리고, 그림 감상을 위해 모두가 숨죽이는 통상적인 전시와 거리가 있습니다. 전시장을 작가의 작업실처럼 연출해 관람객을 초대한다는 일종의 연극적 설정입니다. 물감, 붓, 팔레트 등을 상징하는 정령들 역시 작가가 자리를 비울 때 나타난다는 설정으로 동화 <호두까기 인형>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박신양의 전시회에 함께 한 15명의 정령들

박신양의 전시회에 함께 한 15명의 정령들

회화를 선보이는 공간에 연극 요소를 더한 것은 미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의도입니다. 박신양 작가는 “누구나 미술사와 친한 것은 아니고, 전시를 보러 간다고 하면 왠지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지 않느냐”라며 “즐겁고 편안하게, 쉽게 관람할 전시를 보여드리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림과 거리감을 좁힐 수 있게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는 취지입니다.

박신양 작가의 이런 실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23년 경기 평택 엠엠아트센터에서 연 첫 전시 <제4의 벽>에서도 비슷한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당시 그는 전시장 1층에 자신의 작업실을 마련하고, 2층 데크에서 자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관람객이 내려다볼 수 있게 전시를 구성했습니다. 영화의 ‘부감(俯瞰)’ 앵글처럼 높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도록 시선을 유도해, 작업의 주된 화두인 그리움의 감정과 뒤늦게 회화에 뛰어든 아트테이너(작가+연예인)의 고독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해 호평받았습니다. 평택 항만 근처에 위치한 전시장의 낮은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3만 명의 유료 관객이 들렀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다만 세종문화회관으로 옮겨 온 이번 전시에서도 관람객이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유로폼 벽과 볼륨을 키운 클래식 크로스오버풍의 음악 등이 현장감을 더하지만, 전시 공간의 평면적 구조가 발목을 잡습니다. 연극적 장치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신선하지만, 결국 벽에 걸린 회화를 따라 이동하는 동선에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박신양 당나귀 13, 2017년, oil on canvas, 150F, 2273×1621cm. 민음사 제공

박신양 <당나귀 13>, 2017년, oil on canvas, 150F, 2273×1621cm. 민음사 제공

15명의 정령 역시 작품과 다소 동떨어진 면이 강합니다. 알록달록한 분장은 마치 광대 같은데, 애수나 고독을 상징하는 피에로보다 유머러스한 모습이 강한 클라운에 가깝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모습을 담은 <투우사>나 묵묵하게 걸어가는 <당나귀> 등 주요 작품의 메시지, 붓질이 겹겹이 거칠게 쌓이며 만들어 낸 질감 등 작가의 표현과 정령들이 내뱉는 몸짓이 겉돌아 감정의 갈피를 잡기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박신양 작가는 “수십 년을 연극 속에서 살았고, 거기서 의미를 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제4의 벽을 허문다는 것은 관람객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글. 유승목 기자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 본 콘텐츠는 한경매거진앤북에서 제공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