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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아트 트렌드2
‘소외된 세계 포용하기(Embracing Marginalized Communities)’

지난 선주민 미술에 이어 이번에는 성별, 인종, 성(性)정체성 등의 범주를 뛰어넘어 그동안 소외되고 잊혀졌던 세계를 포용하는 예술을 살펴본다. 약 3만 년이 넘는 미술사의 시간에서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퀴어) 등의 작가가 주요하게 등장하게 된 건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팬데믹을 계기로 미술계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 중심에서 벗어나 그동안 주류에서 소외되어 보이지 않았던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남성, 백인 중심의 미술사가 가지는 편협함에서 벗어나기

인류의 역사가 그러하듯 미술사 또한 주류 기득권층의 시각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다. 서양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3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술사는 유럽 남성 중심의 역사였고, 여성, 유색 인종, 퀴어, 비유럽 국가의 작가 등은 주류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외면받아 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려는 시각 예술의 특성은 필연적으로 주류에서 배제되어 보이지 않던 존재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최근 몇 년간, 특히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갈등과 혐오가 극단적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팬데믹의 시기를 거치며, 미술계에서는 포용적 태도를 촉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비주류 영역에 속해 왔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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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E.H. 곰브리치 (E.H Gombrich)의 초판본. Courtesy of Phaidon
(우)서양미술사 한국판. 도서출판 예경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 는 1950년 발간 이래 19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8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가장 많이 팔린 미술사 책이 되었지만,
650 페이지가 넘어 가는 책 속에서 언급되는 여성 작가는 단 한 명 뿐이다.

소외된 가치를 포용하기 시작한 미술관과 비엔날레

팬데믹 직후 열린 미술 행사부터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2022년에 열렸던 베니스비엔날레(Venice Biennale)는 오랫동안 미술계의 국제 행사로부터 외면받아 온 여성 혹은 논 바이너리 젠더의 작가들을 대거 초대하며,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던 미술사의 편협함을 꼬집었다.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미술관 전시도 다수 이루어졌다.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는 2023년 초, ‘여성 작가와 글로벌 추상 1940~1970(Women Artists and Global Abstraction 1940-1970)’을 주제로 여성 작가 80인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열어 호평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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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중 다니엘 리(Daniel Lie)의 Outres, 2023 설치 전경
©Levi Fanan/ Fundação Bienal de São Paulo

또한,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ão Paulo)는 2023년 열린 제35회 비엔날레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 미술과 선주민 미술(Indigenous Art)을 중심에 두며, 전체 참여 작가의 80% 이상을 비백인으로 구성했다. 이 비엔날레는 2024년 현재, 활발히 이야기되고 있는 ‘선주민 문화'에 대한 담론의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받는다.

주류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여성, 퀴어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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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 Untitled (America #3), 1992 Courtesy of Christie’s

앞선 흐름은 최근의 미술 시장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갤러리들은 비주류의 영역에 속해 온 여성, 퀴어, 글로벌 사우스, 선주민 문화와 연결된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워 갤러리의 프로그램을 구성했으며, 2024년 상반기 진행된 뉴욕 경매의 결과에서도 동일한 흐름을 엿볼 수 있었다.

크리스티(Christie’s)로사 델라 크루즈 컬렉션(Rosa de la Cruz Collection) 이브닝 세일(The Rosa de la Cruz Collection Evening Sale)에서 약 1,300만 달러(한화 약 180억 원)를 넘기며 해당 경매 최고가로 낙찰된 설치 작품인 〈Untitled(America #3)〉는 미국의 개념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의 작품이다. 그는 인간의 유한함, 세상을 떠난 동성 연인에 대한 그리움 등을 주제로 작업하는 쿠바 출신의 퀴어 예술가다.

2024년 5월 13일 열린 소더비(Sotheby's)의 더 나우 이브닝 옥션(The Now Evening Auction)에서는 전체 17점의 출품작 가운데 2명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전부 비백인 인종이거나 여성 작가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크리스티의 이브닝 세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또한,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주요 경매 3사에 출품한 40세 이하의 작가(Ultra Young Contemporary Artist) 중에서는 비백인 인종, 여성, 퀴어 작가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앞으로 미술 시장을 견인할 잠재력 있는 작가로 이들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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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이강승 ©Ruben Diaz
(우)자넬 무홀리
Courtesy of Stevenson, Cape Town, Johannesburg, and Yancey Richardson, New York

‘소외된 공동체' 주제와 관련해 소개될 두 개의 전시는 2021년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이강승 작가의 개인전 〈Briefly Gorgeous(잠시 찬란한)〉와 같은 해 홍콩 펄램 갤러리(Pearl Lam Galleries)에서 열린 자넬리 무홀리(Zanele Muholi)의 개인전 〈Somnyama Ngonyama, Hail the Dark Lioness(암흑의 암사자를 찬양하라)〉이다. 두 작가 모두 오랜 기간 비주류의 영역에 머물며 잊히거나 배제된 역사의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2021년 서울 갤러리 현대 이강승 개인전
〈Briefly Gorgeous(잠시 찬란한)〉

서울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강승은 서구, 백인, 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거나 잊혀져야 했던 소수자들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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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화면을 클릭 후 이강승의 전시를 VR로 감상하세요>

역사학자처럼 집요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그의 작업은 드로잉과 퍼포먼스, 영상, 자수, 콜라주 등 다양한 매체를 바탕으로 한다. 주로 그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을 과거의 가치와 엮고, 겹치는 방식을 취하며, 이를 통해 잊혔던 퀴어 공동체의 유산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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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efly Gorgeous(잠시 찬란한)〉(2021)의 설치 전경
Courtesy of Gallery Hyundai, Seoul

이강승의 2021년 개인전 〈Briefly Gorgeous(잠시 찬란한)〉는 건물 외벽을 포함해, 갤러리 현대의 전 층에 걸쳐 진행되었다. ‘Queering’은 작가의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전시 구성 방식이다. 과거 유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현재 시점에서 제작한 흑연 드로잉, 금실 자수 작품, 영상 등 40여 점의 작품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퀴어 공동체 동료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보여주며 시대를 넘어 전승되는 공동체의 가치를 전달한다.

이강승 작가는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상 4인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고 있다.

“변화는 미세하게라도 일어나고 있다. 결국에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 이강승

2021년 홍콩 Pearl Lam 갤러리 자넬 무홀리 개인전
〈Somnyama Ngonyama, Hail the Dark Lioness(암흑의 암사자를 찬양하라)〉

남아프리카 출신의 시각예술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자넬 무홀리는 흑인 여성과 성소수자 권익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흑백이라는 시각적 대조에서 야기되는 관람자의 감정적 단차를 의도하는 작가의 초상 사진 시리즈는 극단적 밝음의 영역에 가려져 숨겨지고, 잊혔던 영역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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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화면을 클릭 후 자넬 무홀리의 전시를 VR로 감상하세요>

2021년 홍콩에서 열렸던 개인전의 제목 〈Somnyama Ngonyama, Hail the Dark Lioness(암흑의 암사자를 찬양하라)〉 중 ‘Somnyama Ngonyama’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인 줄루어이다. 암흑의 암사자를 찬양하라는 말은 곧 작가 본인의 조상을 찬양하라는 뜻이 된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아이덴티티로 스스로를 위장한 50여 점의 자화상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여성 공동체의 유산과 그 유산의 가치를 지금까지 지켜온 이들의 삶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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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er, New York, 2019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arl Lam Galleries, Hong Kong

사진 속에서 작가는 여성의 가사 노동 및 차별의 역사를 상징하는 빨래집게, 콘센트, 수세미, 화폐 등을 마치 화려한 장신구처럼 활용하거나, 얼굴을 의도적으로 더욱 검게 칠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가 스스로 작품의 피사체가 되는 방식을 통해, 무홀리는 ‘흑인'과 ‘여성'이라는 본인의 정체성과 관련한 사회적 문제가 비단 개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작업은 공동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행동임을 보여준다.

전세계 미술기관과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자넬리 무홀리는 2020년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파빌리온, 2012년 카셀 도큐멘타 (Documenta), 2010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나는 나를 기억해야만 했다.
(I needed to remember me)”
- 자넬 무홀리

이젤에 아카이브 된 소외된 세계를 포용한 미술 전시(VR 전시)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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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 세쿨라 (Sonja Sekula) 개인전, 2023
<상단 화면을 클릭 후 소냐 세쿨라의 전시를 VR로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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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 잭슨 (Tomashi Jackson) 개인전, 2021
<상단 화면을 클릭 후 토마시 잭슨의 전시를 VR로 감상하세요>

이젤(eazel)

이젤(홈페이지: eazel.net / 인스타그램: @eazel.art)은 지난 2015년부터 서울과 뉴욕, 홍콩을 거점으로 여러 국제적인 미술관, 갤러리, 미술 기관 등과 함께 온라인 전시를 VR로 제작, 아카이브해왔다. 이외에도 동시대 여러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미술계 지형도 및 미술 산업 관련 데이터 분석/리서치 등을 진행해 왔으며, 이를 통해 미술계의 각 요소가 서로 유연하게 연결되는 지점에서 미술이 일상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_ 이젤(eaz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