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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면을 끊지 마오,
함흥냉면
지난 달 시원한 육수가 일품인 평양냉면을 비교해보았다면 이번 시간에는 매콤한 맛의 함흥냉면이다. 더위를 물리칠 정도로 매콤한 맛으로 함흥냉면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함흥냉면 명가 3곳을 직접 다녀왔다.
함흥냉면 하면 오장동을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다. 오장동이 함흥냉면의 대표로 떠오른 것에는 이유가 있다. 1.4후퇴 이후 피난민들이 남한에서 정착했던 마을이 바로 오장동이다. 자연히 이북 음식점들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오장동에는 노포로 꼽히는 함흥냉면집이 두 곳 있다. 오장동 함흥냉면집과 흥남집 두 곳이 지척에 위치하고 있는데 흥남집은 오장동 함흥냉면 거리 조성의 원조가 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흥남집은 1953년에 개업해 71년째 영업 중이다. 흥남집의 1대 사장인 노용언 할머니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이라고 한다. 흥남철수 때 거제도로 피난을 내려왔다가 서울로 올라와 오장동에 자리를 잡으며 생계를 위해 냉면집을 열었다. 이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며느리가 가게를 물려받았고 지금은 그 아들의 아들이 이어받아 4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함흥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빨강 양념과 면발이다. 평양냉면이 메밀 함량이 높아서 면발을 씹으면 뚝뚝 끊길 정도라면 함흥냉면은 감자, 고구마 전분 함량이 높아 쫄깃쫄깃한 면발이 특징이다. 매콤한 양념에 메밀 면발을 사용했다면 아마 맛에서 비빔국수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함흥냉면은 원래 ‘회 비빔냉면’이 대표적이다. 회 냉면이라고 하면 날것의 회를 연상할 수 있는데 염장해 양념한 홍어가 올라간다. 지금은 홍어가 워낙 귀해지다 보니 명태회 무침으로 변경되었지만 홍어를 부담스러워하는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는 더 잘 맞는다. 속초나 강릉 등 동해안 지역에 가면 막국수에 양념된 가자미회를 고명으로 얹거나 반찬 등으로 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피난 이후 정착한 함흥 출신 사람들이 동해에 흔한 가자미를 사용해 만들어낸 것이다.
함흥냉면집에 가면 보통 따뜻한 육수가 나온다. 평양냉면집에 메밀면을 우린 구수한 육수를 내준다면 함흥냉면집은 짭짤하게 간이 되어 있는 기름기가 있는 고기 육수다. 매콤한 함흥냉면을 먹다 보면 입이 얼얼하기 마련인데 그 때 매운 입을 중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이 육수다. 냉면이 나오기 전 이 육수만 맛보아도 그 집의 냉면이 맛있는지 아닌지 판가름을 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함흥냉면 마니아들은 이 육수를 다르게 활용하기도 한다. 냉면을 반쯤 먹고 난 뒤 육수를 조금 자박하게 붓고 냉면과 섞어 물냉면처럼 먹기도 한다. 그러면 냉면 한 그릇을 두 가지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이열치열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무더운 여름에 먹는 음식으로 냉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함흥냉면은 원래 더운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 남쪽보다 훨씬 매서운 추위가 강한 북한에서 따끈한 아랫목에 둘러 앉아 매콤한 냉면과 뜨거운 육수를 먹으며 추운 더위를 이겨냈다는 것이다.
지금은 소수의 젊은 세대들을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매운 음식을 잘 못먹는 트렌드에 맞춰 함흥냉면의 명태 고명도 덜 맵게 조정했다고 한다. 원래 오리지널 북한의 함흥냉면의 매운 고명은 매운맛이 상당했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땀구멍이 열리면서 코에 땀방울이 맺히듯이 추운 날 먹으며 땀을 흘리고 추위를 몰아낸 지혜가 담긴 음식이다.
<골드클럽 매거진 미식회> 품평기
냉면 마니아들이 함흥냉면 3파전으로 꼽는 곳들이 있다. 함흥냉면 맛집 최강자는 바로 누구일지 꼼꼼하게 비교해 보았다.
빨강 양념이 가득한 냉면은 육안으로 보기엔 상당히 매콤해 보인다. 대표 메뉴인 회 비빔냉면은 이름만 보고 날 생선회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매콤하게 양념된 명태회를 올려주는데 이게 함흥냉면 맛을 올려주는 치트키다. 쫄깃한 면발을 먹다가 오독오독 씹히는 명태회를 함께 먹으면 씹는 질감도 올려주고 명태 특유의 고소한 맛도 잘 어울린다. 특이하게 냉면 바닥에 약간의 육수가 자작하게 고여 있다. 살짝 먹어 보면 짭짤한 맛이 나는데 흥남집만의 비결인 간장 양념이다. 면을 비비다 보면 뻑뻑할 수 있는데 약간의 육수가 면발을 촉촉해져 면을 잘 풀리게 해주고 감칠맛도 더해준다. 고기 한 점 올라가지 않고, 반찬도 없어 냉면 한 그릇에 1만5000원이라는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곳보다 명태 회 고명이 꽤 푸짐해 먹고 나면 든든함을 느끼게 된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매콤하고 양념양도 딱 적당해 함흥냉면의 표준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주소: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 114
전화번호: 02-2266-0735
TIP: 흥남집에 가면 옆쪽에 다양한 양념이 담긴 통들을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볼 일이다. 면 위에 설탕을 뿌린 뒤 식초와 겨자를 두르고 비비고 나서 마지막으로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먹으면 더욱 맛이 배가 된다.
이북 출신의 주인이 하는 곳은 아니지만 맛집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이 무릎 꿇고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청파동에서 영업을 하다가 숙대 전철역 근처로 가게를 옮겼다. 흥남집과 비교해 빨간 양념이 좀 더 흥건해 상당히 매울 것 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다행히 한 입 먹어보니 우려할 정도로 맵지는 않았지만 매콤함이 적당히 있는 편이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명태 고명은 흥남집보다 적은 편이긴 하다. 49년 냉면장인이 운영하는 곳인만큼 이곳 역시 상당히 감칠맛 있게 매운맛을 자랑한다. 직접 뽑는다는 면발도 쫄깃하고 식감이 아주 훌륭하다.
주소: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84길 4
전화번호: 02-703-6357
TIP: 매운 음식을 잘 못먹는다면 만두를 주문해보자. 이곳의 만두는 부추와 호박 등 야채가 많이 들어가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매콤한 냉면을 만두에 얹어 먹어도 잘 어울린다. 찜기째로 만두가 나오는데 더 따끈하고 맛있어 보인다.
젊은이들의 거리 명동에 오랜 함흥냉면 맛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명동함흥냉면은 함흥냉면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곳이다. 1964년 명동에 터를 잡은 이후 그 역사가 벌써 60년이 되었다. 명동함흥냉면의 냉면은 매콤한 맛이 덜하고 덜 자극적인 맛이라 함흥냉면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호불호 없는 맛이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입맛을 자극하고 꼬들꼬들한 간재미회와 아삭한 오이채, 채썬 배까지 식감이 풍부하다. 이곳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인만큼 다른 함흥냉면집들과 달리 떡만두국, 갈비탕, 홍어회 등 다른 메뉴들도 있어 곁들여 함께하기에도 좋다.
주소: 서울 중구 명동10길 35-19
전화번호: 02-776-8430
TIP: 함흥냉면도 맛있지만 이곳의 물냉면도 인기가 많다. 새콤달콤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의 조화가 매우 이상적이다. 면사리가 있어 부족한 양을 채우기에도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