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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평양냉면의 시간

바야흐로 평양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시원한 육수에 구수한 메밀향 가득한 면발은 오늘도 수많은 평냉 마니아들을 설레게 한다. 냉면의 명가라고 불리는 서울의 대표 노포 맛집들을 찾아 평양냉면을 직접 비교해 보았다.

2년 만에 돌아온 냉면 명가, 을지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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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은 서울시의 중구 세운지구 재개발로 인해 아쉽게 문을 닫게 되었다. 지난 2022년 6월 25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을지면옥의 냉면 맛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을지면옥의 마지막 날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워낙 냉면 노포로 유명하다 보니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 중에는 BTS멤버 리더 RM도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직접 을지면옥 입구 사진과 함께 우는 문구를 남길 정도로 공개적으로 을지면옥 마니아임을 보여주었다.

아쉬움 속에 문을 닫았던 을지면옥이 2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SNS를 중심으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지난 4월 22일 을지면옥이 오픈하는 날은 오픈전부터 대기줄이 길게 줄을 늘어설 정도로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새단장한 건물은 신식으로 완전히 바뀐 모습이지만 슴슴한 국물맛에 고춧가루가 무심하게 뿌려져 나오는 ‘그 맛’은 옛날 그대로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추억의 맛을 찾아 오늘도 MZ들부터 7080세대들에 이르기까지 을지면옥 앞은 사람들로 붐빈다.

냉면에도 파가 나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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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만 당이 나뉘는 것이 아니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무슨무슨 계열인지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며 어느 계열 냉면을 좋아하는지 물을 정도다. 냉면 전문가들은 평양냉면을 크게 ‘의정부 계열’과 ‘우래옥 계열’, ‘장충동 계열’로 나눈다. 의정부 계열의 기원부터 살펴보자. 평안도 대동군 출신의 홍영남씨는 1969년부터 경기도 전곡 ‘평양면옥’에서 냉면을 만들어 팔다가 1987년 의정부로 이전을 했다. 이 평양면옥의 명맥은 장남인 홍진권씨가 대를 이어나갔다. 이후 1세대 홍영남씨의 둘째 딸 홍정숙씨가 1985년 을지면옥을, 맏딸 홍순자씨가 ‘필동면옥’을, 마지막으로 막내딸인 홍명숙씨가 잠원동에 위치한 ‘의정부 평양면옥’을 운영하며 오늘의 냉면집들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우래옥 계열’은 어떤 것일까. 평양의 고급 한식당 ‘명월관’을 운영하다 광복 후에 서울로 왔다는 장원일씨가 1950년 을지로 4가에서 영업을 재개한 곳이 우래옥의 시작이라고 한다. 장원일씨의 손녀와 쌍둥이 여동생의 큰딸이 공동 운영중이다. 한우 암소만으로 우려낸 진한 육수에 강원도 평창 메밀로 면을 뽑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우래옥에서 조리장으로 일했던 고(故) 김태원 조리장이 만든 벽제갈비와 봉피양 냉면을 이쪽 계열로 분류하는 이들도 많다.

마지막으로 장충동 계열이다.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다 월남한 김면섭씨와 며느리 변정숙씨가 1985년 장충동에 ‘평양면옥’을 개업했다. 본점은 큰아들이, 논현점은 변씨와 둘째아들이 운영중이라고 한다. 논현동에서 최근 신흥 냉면 강자로 떠오르는 ‘진미평양냉면’ 주방장이 논현점에서 오래 일했다는 점 때문에 진미평양냉면 역시 ‘장충동 계열’로 분류한다. 육수맛은 의정부 계열과 비슷하게 슴슴한 스타일이지만 조금 더 간이 있는 편이고 면이 다소 까슬까슬하다는 평이다.

그 맛이 궁금하다!
<골드클럽 매거진 미식회> 품평기

사람들이 무더운 날씨에도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1~2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이유가 있을 터. 노포의 맛을 확인하기 위해 에디터K가 직접 방문했다.

을지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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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계열의 특징은 다소 싱겁다고 생각될 정도의 ‘슴슴함’에 있다. 처음 평양냉면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을지면옥의 냉면을 접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르겠다. 평소 시중 냉면집의 새콤달콤 자극적인 맛에 익숙했던 사람이라면 육수맛은 맹물맛에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는가. 한 번 이 슴슴한 맛에 중독이 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고명으로 올라온 고기가 돼지와 소고기 섞여 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육수도 소고기 육수와 돼지고기 육수를 섞어 사용한다. 처음에는 심심한 듯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은은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30길 12
전화번호: 02-2266-7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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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을지면옥은 냉면도 냉면이지만 돼지고기 편육도 인기다. 거의 테이블마다 냉면과 편육을 안주 삼아 소주를 낮부터 먹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비계 부분이 적당히 붙은 편육은 잡냄새도 없을 뿐 아니라 쫄깃하게 잘 삶아져 나온다.

우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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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래옥의 냉면은 초심자들도 무난하게 입문할 수 있을 정도로 육수의 맛이 강한 편이다. 육수 빛깔부터 을지면옥과 달리 살짝 갈색빛이 도는 게 진하게 느껴진다. 육수를 맛보면 진한 육향이 느껴지고 살짝 간간한 맛이 입맛을 더욱 돋게 한다. 먹으면 먹을수록 은은한 감칠맛에 메밀면의 씁쓸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조화를 잘 이룬다. 고기나 얇게 썬 배 등 고명도 푸짐한 편. 1만6000원이라는 가격은 다소 비싸고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주차장도 잘 되어 있고 오래됐지만 깔끔하게 유지되는 실내 분위기도 멋스럽다.

주소: 서울 중구 창경궁로 62-29
전화번호: 02-226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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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아는 사람은 꼭 주문한다는 김치말이국수를 빼놓지 말자. 기본적은 맛은 평양냉면과 매우 흡사하지만 여기에 새콤한 김치와 고소한 참기름이 더해진 맛이다. 평양냉면보다 더 간이 되어 있고 김치까지 곁들여져 다소 자극적인 맛이 입맛을 당기게 한다.

장충동 평양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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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과 비슷하게 슴슴한 계열의 국물맛을 지녔지만 조금 더 소금간이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집 면발은 참 매력적이다. 쫄깃하면서도 고구마 전분으로 만드는 면발보다는 아니지만 적당히 부드러움도 느껴지고 면발이 얇은 편이라 목넘김도 좋은 편이다. 함께 나오는 무김치와 배추김치와도 조화를 잘 이룬다. 삼겹살을 연상시키는 기름층 많은 돼지고기편육이 올려지는데 국물에서는 돼지고기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냉면 고명으로는 독특하게 오이와 아주 길게 썰어진 무채가 들어가는데 국물에 오이의 상큼함이 아주 살짝 느껴지기도 한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불호의 요소가 될 듯.

주소: 서울 중구 장충단로 207
전화번호: 02-2267-7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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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추가만두라고 해서 만두 3개짜리 단품이 있다. 냉면 하나만으로는 좀 허전하고 그렇다고 정식 단품을 주문하기에는 부담스러울 때 딱이다. 을지면옥의 경우 냉면 외에 추가할 수 있는 메뉴가 제육과 수육 밖에 없는데 평양면옥은 만둣국, 온면, 어복쟁반 등 사이드 메뉴가 다양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