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ㅣ 건강

[이심전심과 동상이몽]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마냥 좋던 시절은 끝난 것일까. 그의 사소한 모습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를 볼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의 절반 이상은 이제 ‘잔소리’가 됐다.

그냥 그대로 둘 것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아 최근 많이들 찾는 스페인 요리가 있다. 바로 새우와 마늘을 올리브유에 튀기듯 구워내는 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다. 만들기도 쉽고 간단히 와인 한 잔하며 곁들여 먹기에도 훌륭하다. 우리 부부도 매번 밖에서 사먹기만 하다 얼마 전 남편과 마트에 들려 냉동새우를 발견하곤 집에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하필 일이 있어 필자가 집을 비운 주말, 남편은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새우를 꺼내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조리대 위에 놓인 새우를 보는 순간, “어, 요리하려고? 우와!” 한번의 긍정적인 칭잔 이후 내 입에서 줄줄이 나온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마늘이랑 고추는 꺼내두었는지, 미리 후추랑 소금은 준비를 해두었는지, 기름이 안 튀게 잘 할 수 있겠는지, 어느 접시에 담을 것인지 등등(감바스는 냉동새우를 쓸 때는 특히 기름이 튀지 않게 주의해야 하는 요리다). 오랜만에 요리하기로 맘먹은 남편을 그저 잘 기다리면 될 것을 옆에서 잔소리를 초단위로 늘어놓으니 얼마나 얄미웠을까? 이제와 돌이켜 보니 드는 생각이다.

여차저차 요리는 완성되었고 말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던 남편은 완성된 요리를 식탁에 올리며 그제야 한마디 한다.
“내가 다시는 집에서 요리 안 해!”

괜히 단정짓 듯 말하는 남편의 말투에 나는 또 맘이 상했다. 그 뒤는 누구나 예상하는 그대로, 부부의 평범한 투닥거림이 이어졌다. 맛있는 요리를 와인 한 잔과 우아하게 곁들여보려던 근사한 계획은 완전히 엉망이 된 셈이다. 다소 불안하더라도 요리를 하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만 가진 채, 아무 말 없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바라보기

문득 얼마 전 부부가 함께 본 영화 ‘루비 스팍스’가 생각났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자 주인공은 10대 후반부터 천재적 작가로 유명세를 탄 캘빈이다. 어린 나이부터 천재소리를 들으며 주목을 받아왔지만, 언젠가부터 글이 생각대로 써지질 않아, 정신과 상담도 받아가며 본인의 마음을 정리해 보는 중이다. 그의 일과는 강아지와의 산책, 책읽기가 전부다. 여자친구와는 헤어진 지 오래고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친형뿐이다.

그러던 중 꿈속에 나타난 이상형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게 됐고, 어느 날 아침, 본인이 쓴 글 속의 그녀 ‘루비’를 현실에서 만나게 된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그녀를 비난하며 완벽한 연인을 꿈꾸어 온 캘빈에게 완벽한 이상형이 나타난 셈이다. 정말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흥분한 캘빈은 형에게 그녀의 비밀을 전하지만, 형은 두 달만 지나면 여자들은 변하기 시작하니 원고를 수정하라 권한다. 하지만 완벽한 그녀에게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캘빈은 원고를 서랍에 넣어 잠가 버렸다.

그 후로 캘빈과 루비는 내내 행복했을까?
소설 속에서 나타난 그녀이지만 그녀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글을 멈춘 동안 여러 사건들로 그녀는 변해가고 캘빈은 본인의 마음에 드는 그녀를 만들기 위해 글을 다시 써내려 간다. 하지만 원고에 손을 댈수록 상황은 꼬여만 간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함구하겠다. 필자는 ‘볼만한 영화’로 판단하니, 직접 보시길 추천한다. 그리고 꼭 내 옆의 그 사람과 함께 보길 권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껏 바꿀 수 있는 ‘완벽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상상해온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영화는 말한다.
“누군가를 나한테 맞추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를 조종하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세요!”
익히 잘 아는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했다.

그를 만나기 전에 알았던 몰랐던, 이제 와 거슬리기 시작한 ‘그이의 버릇’ ‘보기 싫은 모습’ ‘실수’는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 모습들은 ‘그’ 안에 포함돼 있었다. 사랑대신 나의 것으로 소유하려 할 때 우리는 흔히 그런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를 내가 조종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찾았던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서를 읽어 내려가는 부부의 말이 새삼 귀에 들어와 박혔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혼식 당일 혼인 서약을 통해 서로에게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을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또 많은 부부가 말한다.
“아휴, 지겨워. 난 이제 포기했어!”

내 옆의 아내와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과 같은 모습일 뿐 나의 마음이 변해왔다는 걸 왜 자꾸 까먹는지 영화 한 편을 통해 다시 돌아본다.

굿커뮤니케이션 박혜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