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ank ㅣ 아트투자

[똑똑한 아트컬렉션]
다시 피어나는 미술계,
우리가 읽어야 할 시그널

코로나19로 한 많았던 2020년, 미술계도 다르지 않았다. 각종 아트페어들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 올해는 어떨까. 다양한 아트페어가 열리며 ‘다시 피어나는’ 한 해가 되고 있다. 마니아들의 관심과 발걸음도 작년을 보상하듯 더 꾸준하고 뜨겁다.

미술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어디서 기인할까. 단순히 미술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 내 삶의 목표와 이유가 무엇인지 찬찬히 고민해보면 알 수 있다. 첫째는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은 인간의 본능 때문이고, 둘째는 미술품은 내가 누군지 설명해 줄 수 있는 권위 있는 도구이며, 셋째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안전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미술계의 시그널을 읽어야 할까?

확실한 예측은 오직,

불안할수록 확실한 무언가를 잡고 싶어진다. 작년에 ‘Art Basel & UBS’에서 발행한 <2021년 미술시장 보고서>에서 고액자산가(A high-net-worth individual) 2,569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조사대상자의 66%는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더 미술품 구매에 관심이 증가했다고 한다. 자산가들은 불안할수록 미술품과 같은 확실한 ‘한 점’에 더 관심을 두게 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하고 싶어 한다. 미술시장의 움직임도 이미 자리를 잡은 작가들의 회고전을 중심으로 대규모 전시가 전 세계를 연결하며 열리고 있는 양상이다.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b. 1929~)는 싱가포르 전시를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바우(Martin-Gropius-Bau, 4월23일부터 8월15일까지), 미국 뉴욕 보테니컬가든(NYBG: KUSAMA: COSMIC NATURE, 4월10일부터~10월31일까지), 그리고 런던 테이트모던(Tate Modern, INFINITY MIRROR ROOMS, 2021년 5월18일~2022년6월12일까지)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이 대규모 회고전 외에도 뉴욕, 런던의 전속 갤러리에서 개별 전시가 진행 중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호박, 영원한 그물 시리즈’ 외에도 중요한 모멘텀이 된 시기의 작품들이 총 망라되는 것이 이번 전시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의 거울방(Infinity Mirrored Room – Filled with the Brilliance of Life, 2011/2017),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展

출처: https://artreview.com

뉴욕 보태니컬 가든에서 전시 중인 야요이 쿠사마 작품

출처: https://www.nytimes.com
https://www.nybg.org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b. 1937~)도 영국 로얄 아카데미(Royal Academy)에서 5월 23일부터 작년의 ‘노르망디’ 풍경을 담은 아이패드 신작 페인팅으로 전시를 시작했다. 나라 요시토모(Nara Yoshitomo, b. 1959~) 역시 LA시립미술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달라스 현대미술관(Dallas Contemporary)에서 대규모 회고전 중이다.

투자는 항상 불투명함을 안고 간다. 미술품 시장에서도 ‘확실한 예측’을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 시장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대가는 어떠한 순간에도 살아남는다”는 걸 기억하자. 갖고 싶은 미술품을 다른 자산과 비교할 수 있을까.

나의 세 가지 소원

지금, 웨이터가 막 마개를 따고 있는 저 병 속에서 탑처럼 커다란 요괴 하나가 튀어나와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하리라. 건강, 나와 동행할 젊고 아름다운 애인, 그리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만 달러의 여유자금.

–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눈의 호사 중 74, (헤르만 헤세, 을유문화사)

 

헤세의 대답처럼 필자도 세 가지 소원을 생각해본다.

모두의 건강, 확실한 행복, 그리고 그림을 좋아하는 건강한 짝꿍’.

매월 가고 싶은 미술 행사에 동그라미를 치며, 전시와 전시 후 식사와 수다라는 확실한 행복을 갖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전시를 즐기려면 그림을 좋아하고, 온종일 전시장을 함께 누벼줄 건강한 짝꿍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즐거움은 늘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예컨대, 그림 짝꿍과 뉴욕에 가서 프리즈(Frieze 아트페어)을 보고,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먹은 뒤 밤 산책을 하는 것이 지금 내 소원이다.

올해 5월을 시작으로 코로나 이전과 같은 현장 아트페어가 열렸다. 뉴욕 프리즈가 이 시작이었는데, 뉴욕 프리즈는 미술품 구입 선금 1,260달러(약 140만원)를 내고 얻을 수 있는 VIP 표도 추가로 내놨지만 없어서 못 판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다른 주에서까지 뉴욕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사러 왔고, 투자를 생각하는 신규 컬렉터가 증가하여 좋은 판매 성과를 얻었다는 소식이다. (내년에는 프리즈가 한국화랑협회서 주최하는 키아프(KIAF, https://kiaf.org)와 공동 아트페어를 개최한다)

올해 프리즈 뉴욕은 ‘더 쉐드(The Shed:뉴욕 맨해튼의 허드슨야드 에있는 문화 센터)’에서 개최했다

출처: https://www.vogue.com

프리즈 뉴욕 2021, 가고시안(Gagosian) 부스 전경, 1984년생 폴란드 작가 ‘에바 유스키에비츠(Ewa Juszkiewicz)’ 의 페인팅이 눈에 띈다

출처: https://www.artsy.net

아트부산 2021, 부스 전경

출처: http://www.artbusandesign.com

뒤를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아트부산이 5월 14일부터 3일간 있었고, 한국 아트페어 사상 최대 작품판매액 기록을 세웠다. 끝없는 작품 전시와 판매의 반복으로 아트페어가 끝나, 참가자들 모두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는 뉴스가 연일 계속됐다.

실제로 VIP 오픈 첫날에 많은 사람이 아트페어를 찾아 작품을 구매하는 모습이었다. 이전에는 구경 온 사람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사러 온 고객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 큰 차이로 느껴졌다. 물론 이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해외 유명 갤러리의 참여와 샤갈의 작품이 23억원에 판매되는 등 거래 단위가 커진 것도 눈에 띈다. 아트페어를 찾은 연령층이 크게 낮아진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판매작품도 예년과 달리, MZ세대가 좋아하는 아트토이(Art Toy), 판화가 증가했다.

아트부산에 참가한 SA+의 부스,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1971년생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카예하(Javier Calleja)’ 작품

아트부산 아트페어 2021년 전경

출처:http://www.artbusandesign.com

아트부산에서 선보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b. 1967~)의 <Your happening, has happened, will happen> 작품, 프로젝터 9개로 벽을 비추어 9개의 무지개 그림자가 생기는 설치 작품(2019년 테이트모던에서 선보였던 작품)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K)도 매년 3월에 개최하던 것을 5월로 연기했지만 실물 아트페어를 오픈했다. 이번 아트바젤에서는 1:1 매칭 서비스를 선보였다. 홍콩에 있는 담당 컬렉터가 미리 지정한 3개 갤러리를 대신 돌아주며, 그림도 보고 작품 구매를 도와주는 서비스다. 대행자를 통하기 때문에 내 의사가 제대로 표현이 안 될까 걱정했는데, 문의 사항을 현장에 있는 갤러리 직원에게 즉각적으로 확인해줘서 마치, 아트페어에 직접 참가한 듯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했다.

해외에서 사람들이 직접 가지 못해 판매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장은 ‘완판(완전판매)’ 분위기였다. 첫날 준비한 작품들을 모두 판매하고, 준비한 작품이 없어 몇 점만을 걸어둔 소위 ’빈벽‘ 갤러리가 있을 정도였다. 향후 미술시장의 미래는 점치기 어렵지만, 2020년의 답답함을 깨고 나온 듯 2021년 상반기에는 샴페인을 따서, 한 모금 정도는 마셔도 될 듯하다.

정신의 호사

아나 마리아 밀란(Ana Maria Millan, b.1975~)
정치적 담론과 전쟁의 역사를 마치 게임을 하듯 풀어내는 작가의 작품, 특히 이미지와 함께 연출되는 사운드가 압도적인 작품으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최근의 미술을 만난 기분이다

코라크리트 아루나논드차이(Korakrit Arunanondchai, b. 1986~)
죽음을 위한 노래, 2021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누군가를 죽음으로 보내 주어야 할 때 우리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준다
출처: http://jnilbo.com

전시가 가진 ‘힘’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 시간은 ‘광주 비엔날레’다. 생각의 바구니를 한번 비우고, 채워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 때쯤 광주에 간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광주 비엔날레는 최고 수준의 미디어 작품을 한 장소에서 모두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미디어 작품은 소장자가 드물어서 좋은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좋은 작품 한 점은 신세계를 만나,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는 ‘개안(開眼)’의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트이면서 몸속의 답답함이 싹 씻겨 내려가는 ‘행복한 환각’ 같은 것이다.

평소에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수집할 수 있는 것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미디어아트가 방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이 시대의 오류를 짚어내고, 미래를 예견하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세련미와 더불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기존 미술계에서는 드문 종류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눈과 귀를 깨우는 지금의 미술이라는 점을 배웠다.

작품들은 ’감시사회의 시작과 경각심‘ ’죽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뼈아픈 과거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던지고 있었다.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이승택(b.1932~)작가의 작품,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2020.11.25.~2021.3.8. 이승택-거꾸로,비미술 展

좋은 작품은 미술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와 컬렉터의 눈에 띄게 되고, 갤러리 전시와 궁극적으론 미술관 전시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의 작가는 다시 A급 갤러리(자본력을 바탕으로 신진 작가를 시장에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중요한 컬렉터를 많이 보유한) 전시를 통해 좋은 컬렉터를 찾아가고, 간혹 경매를 통해 현실 가치 증명을 받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미술상도 받고, 비엔날레 작가도 되고, 최고 수준의 미술관(테이트모던, 구겐하임, 휘트니, 로열아카데미 등)에서 회고전을 한다. 그렇게 작가는 대가가 되고, 미술사에 기록된다.

우리는 이런 작가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보고, 현실의 행복을 충족시켜 줄 아트페어를 실컷 다니며, 비엔날레와 같이 잘 기획된 무게감 있는 전시를 접하며 ‘정신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그림 수집’은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 같은 것이다. 진심으로 즐기다 보면 아트컬렉션 매뉴얼이 별것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다른 건 다 잊고 즐기는 것에 집중하자. 그리고 아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어디론가 그림을 보러 떠나보자. 어느 순간 자연스레 상위 1%의 컬렉터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추가적 비법은 느림이다. 느리게 가야 취향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라.

 

글 사진 이슬기

학부에서 경영학 전공 후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전략기획일을 하였다.
소더비(Sotheby’s, London)에서 예술사와 아트비즈니스(MA)를 공부했고, 선화문화예술재단 큐레이터로 일했다.
2009년부터 문체부 산하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해외미술시장 연구원과 미술시장 부문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