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미녀 골퍼’ 윤채영이 코스를 떠난다. 2006년 KLPGA 데뷔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꾸준한 실력을 보여줬던 그녀가 올봄 한·일 양국에서 두 번의 은퇴 경기를 갖는다. 아쉬움도 있지만 은퇴를 고민하며 골프를 더 사랑하게 됐다는 그녀의 은퇴 이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라이프스타일 ㅣ 골프
두 번째 봄,
활짝 피어날 ‘윤채영’
뜨겁고 가뿐한 마음
봄이다. 새로운 프로젝트, 새 친구들, 새로운 분위기 등 봄은 여러모로 새로운 출발과 어울리는 단어다. 그렇지만 윤채영 프로는 17년 투어 생활을 접고 코스를 떠난다. 지난달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야마하레이디스오픈과 이번 달에 열리는 KLPGA투어 첫 메이저 대회인 크리스F&C 제45회 KLPGA 챔피언십이 그녀의 은퇴 무대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원조 ‘미녀 골퍼’로 활약한 그의 은퇴 소감이 궁금해졌다.
“참 오래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 KLPGA투어에 나가보면 (안)선주 언니 말고는 내가 제일 선배다. 사실 올해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하려 했지만, 시드를 유지하지 못해 은퇴가 좀 앞당겨져 아쉽다. 부모님을 모시고 대회장 주변 맛집과 온천을 다니며 ‘은퇴 투어’를 할 계획이었는데….”
꾸준히 쌓아온 결실
2006년 KLPGA투어에 데뷔한 이래 2014년 7월 제주삼다수마스터스에서 골프 여제 박인비를 누르고 160경기 만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그녀는 KLPGA투어에서 11년 동안 시드를 유지할 정도로 실력과 멘털이 안정적이고 꾸준했다. 2017년엔 일본으로 건너가 6년 동안 JLPGA투어에서 159경기를 치르며 4차례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총 24회 ‘톱 10’에 진입했다.
화려한 외모와 출중한 실력을 겸비한 그녀는 ‘얼음 공주’라 불리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샷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자주 포착되기도 했다. 스튜디오 촬영 중간중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껴지는 소탈한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촬영 중의 그녀는 웃음도 많았고, 대화도 시원시원하게 이어 나갔다.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은데, 페어웨이에서 샷을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절대 미소를 띠면서 샷을 할 수가 없다. 골프에 관해서만큼은 강박이라고 할 정도로 진심을 다하게 되는 것 같다.”
후배들이여, 도전하라!
골프 스윙의 완성을 위해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눌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다는 그녀는 천상 운동 선수다. 한때는 체력 단련을 위해 시작한 러닝 훈련이 너무 좋아서 매일 뛰다 보니 달리기에 중독될 정도였다고 한다. 거의 매주 쉬지 않고 대회가 열리는 일본투어에 적응해낸 원동력도 이런 체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사실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1년이 지날 때까지는 매 순간순간이 힘들었다. 그래도 고비를 넘기고 나니 팬도 늘어나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더라도 일본 진출은 얻은 것이 많다고 평가하는 그녀다. 지난해 11월 다이오페이퍼엘르에어레이디스오픈에서는 일본 팬들이 ‘채영 고마워’라는 문구가 담긴 선물을 전달하며 그녀의 마지막 대회를 기념해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KLPGA투어 선배로서 윤채영 프로는 후배들에게 늘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배가 되고 싶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세계 무대를 위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워낙 어려서부터 훈련을 잘 받아서 훌륭한 선수가 많다. 피지컬도 좋고 기술 분석 메커니즘이 뛰어나다 보니 외국 진출 후 1~2년 정도 고비만 넘기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그리고 재미있게
은퇴 이후 펼쳐지는 삶도, 그리고 자신이 가는 길이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 있기에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갑작스런 은퇴로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동안의 골프 인생은 물론이고 윤채영의 삶을 아우르는 모토가 ‘즐겁게 그리고 재미있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일본투어가 고전을 면치 못할 때 오히려 친구들과 후지산 등반을 즐기기도 했고, 은퇴를 앞두고 2개월 동안 골프채를 아예 잡지 않았을 때도 최나연, 김하늘, 김다나 등 오래된 동료들과 함께 스키장을 찾아 은퇴를 앞둔 서운함을 달래기도 했다.
“은퇴가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은퇴를 생각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진짜 골프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런 그녀에게 늘 힘이 되는 건 역시 가족이다. 남동생(윤정원 프로)과 여동생(윤성아 프로) 둘 다 골프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골프 가족이라 누구보다 동생들은 그녀에게 힘이 된다. 쉽지 않은 일본투어 생활 중에도 힘들면 돌아오라던 아버지의 말은 큰 울타리가 됐다.
가족의 힘을 바탕으로 은퇴 후 펼쳐지는 그녀의 인생 제2막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된다. “그동안 해왔던 레슨과 방송, 그리고 골프웨어 모델 등의 일을 계속 해나가지 않을까. 하지만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 다방면으로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다. 정해져 있지 않아서 더 기대된다. 어떤 일이 됐든 간에 ‘즐겁게 재미있게’ 할 생각이다.”
글 엄윤정 기자
진행 이서안
헤어&메이크업 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