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푸른 바다,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시원한 마파람을 맞으며 걷는 영덕 도보여행은 생각만으로 가슴이 부푼다. 쨍한 바다내음과 설레는 날씨 덕에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라이프스타일 ㅣ 여행
[스토리 대한민국]
말 없는 청산,
티 없는 가을 하늘
‘영덕’
나옹왕사와 장육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나옹왕사(1320~1376)의 ‘청산가’ 한 구절이다. 7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승의 지혜는 현대인의 마음을 울리는 깊은 통찰을 품고 있다.
영덕은 나옹의 고향이다. 왕사로 불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공민왕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고승을 왕사로 책봉했던 제도가 있었다.
나옹은 적극적인 현실참여, 실천하는 ‘선(禪)’을 중시했다. 앉아서 구도하는 수행법을 멀리했고, 끊임없이 중생을 만나는 수행을 실천했다. 조계종의 본산인 송광사를 비롯해, 입적한 신륵사와 그의 고향에 세운 장육사에 이르기까지, 국내 내로라 할 유명 사찰들에 나옹의 ‘실천하는 선’의 흔적이 남았다.
나옹왕사반송유적지
나옹이 태어나 자란 영덕은 그에 대한 흔적이 아직도 적지 않게 남아있다. 나옹왕사반송유적지에는 그의 탄생과 출가에 관련된 유적들을 쫓을 수 있다. 가난으로 세금을 내지 못해 끌려가던 한 여인이 이름 모를 냇가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훗날의 나옹이다. 출생과 동시에 어미를 잃은 핏덩이를 수백 마리의 까치들이 둘러싸 보호했다는 설화가 유적지의 ‘까치소’를 통해 전해진다.
반송유적지는 “괴로움 투성인 이 삶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라는 그의 의연한 출가 의지를 잘 느낄 수 있는 유적지기도 하다. 나옹은 반송(盤松) 지팡이를 꽂아 두고, “이 나무가 살아 자라면 내가 살아있는 줄 알고,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나무는 1965년 고사될 때까지, 무려 625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장육사
장육사는 나옹이 서기 1355년, 고려 공민왕 때 창건한 사찰이다. 특히 장육사 홍련암에는 나옹을 비롯해 그의 스승인 지공, 그의 제자인 무학의 영정이 함께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 불교계 3대 화상으로 손꼽히는 셋의 영정을 모신 절이기에 불교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들러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절을 품고 있는 운서산(雲棲山)은 말대로 구름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그저 머물다 갈 뿐인 구름처럼 나옹과 고승들은 이 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절의 툇마루에 앉아 운서산 자락을 감상하자면, 나옹의 ‘청산가’ 자락이 귓가에 맴돈다.
강구항 대게 경매
‘대게’만 기억하면 섭섭하다
‘영덕’하면 떠오르는 수산물은 역시 ‘대게’다. 대게는 금어기를 제외하면 연중 제철이 따로 없다. 아쉽지만 6~11월 사이는 대게의 산란기로 금어기에 속한다. 동경 131도 넘어 먼바다의 금어기는 10월까지로, ‘햇대게’는 11월에 들면서 시장에 유통된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찬 일명 ‘박달대게’는 산란기를 마친 가을부터 볼 수 있다. 가을과 겨울, 봄에 이르기까지 대게는 영덕 어민과 시장 상인의 밥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강구항 영덕대게마을과 마을 속 ‘대게거리’는 우리나라 대게 요리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제철이 아니어도 산지에서는 제법 수율 좋은 대게를 먹을 수 있다. 금어기 해제 전에는 당연히 러시아산 대게가 주를 이룬다. 수입산이어도 같은 동해바다, 특히 물이 더욱 차가운 캄차카 반도 근해에서 잡힌 게들이어서 살이 더 차지다는 평을 받는다.
강구항에 위치한 ‘사계절 대게’는 말 그대로 사계절 살이 꽉 찬 대게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금어기라면 러시아산 대게를 맛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영덕에서 대게만 이야기하면 섭섭하다. 영덕-포항 인근의 국민생선급 인지도를 자랑하는 ‘물가자미’도 빼놓을 수 없다. 지역에서는 ‘미주구리’라 불리는데, 일본어와 지역 사투리가 합쳐진 ‘미주구리’가 특유의 어감 때문인지 친숙하게 들린다.
물가자미 말리는 모습
물가자미는 이 지역에서 연중 잡히며, 언제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동, 서, 남해 어디서나 잡히지만 특히 차가운 바다에서 자란 것이 살이 차지고 맛이 뛰어나, 동해에서 잡힌 것을 으뜸으로 친다. 주로 말려서 조림으로 먹거나, 밥식혜를 담가 먹고, 뼈가 부드럽기 때문에 세고시(뼈째회)로도 먹는다.
물가자미로 만든 대표적인 음식인 밥식혜는 가을의 것을 최고로 쳐준다. 날이 추워지며 더욱 차진 육질에 달디 단 가을무, 햅쌀로 지어낸 밥을 넣고 만든 밥식혜가 어촌마을 밥상을 풍성하게 한다.
강구항 시장 한 켠 청송식당은 1976년 개업한 자연산 물가자미 전문 횟집이다. 식당은 50여 년 동안 매년 고추장과 막걸리 식초를 담가왔다. 이 두 재료로 만드는 수제초장이 별미다. 공장제 기존 초장과는 차원이 다른 수제 초장을 두 국자 정도 담뿍 담아 비벼먹는 횟밥, 반쯤 남기고 얼음물과 초장도 조금 더 부어 물회로도 먹는다. 메뉴의 ‘미주구리회’를 시켜 물가자미 본연의 맛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9월의 대진항 앞바다
동해는 9월이 ‘제철’
동해바다는 8월말부터 10월까지가 제일 따뜻하다. 액체가 고체보다 더디게 데워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보다 한결 맑아진 바닷속 시야 덕에 8월말부터 9월 즈음이 동해바다를 즐기는 가장 맞춤한 철이라 할 수 있다.
영덕의 해변을 따라 가로지르는 20번 국도를 타고가면 어느 곳에 내려도 시원한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주차와 화장실 이용 등이 편리하며, 파도가 심하지 않은 곳을 찾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곳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해수욕장은 물론 작은 항구의 해변, 특히 영덕 블루로드 주변의 바다에는 몸을 식힐 만한 곳이 많다. 게다가 피서철이 지난 때라 피서객이 적어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잠수와 수영 등에 자신있고 불법적인 장비를 쓰지 않는다면, 해루질을 해보는 것도 새로운 추억거리가 된다. 청정해역인 영덕의 해변은 깊이 잠수하지 않아도 먹을거리를 넉넉히 내어준다. 뿔소라와 고둥, 성게, 군소는 물론이고 운이 좋다면 눈 먼 물고기나 10년 묵은 전복도 발견된다.
해루질을 할 때는 어떤 경우에도 혼자 물에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 반드시 둘 이상이 짝을 이뤄 움직인다. 아무리 물이 맑아도 갑자기 깊어지는 동해바다의 특성은 누구에게나 위험할 수 있다. 또한 마을어장과 통제구역 등에서는 당연히 채취가 금지된다. 해루질 전 반드시 해수욕장 관리소나 어촌계, 지자체에 문의해야 분란을 피할 수 있다.
해맞이공원 인근 바다
유독 아름다운 이 시기 영덕의 풍경을 한 줌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도보여행이 제격이다. 영덕군이 관리하는 ‘영덕 블루로드’는 영덕의 산과 바다를 온전히 담아낸 길이다.
영덕 블루로드
영덕 블루로드는 영덕의 역사와 문화 먹거리, 그리고 제철을 맞은 영덕의 바다를 즐기기 위한 가장 완벽한 도보여행 코스다. 포브스코리아가 주최하는 소비자선정 최고의 브랜드 대상 ‘테마관광부문’에서 3년 연속 수상한 바 있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해파랑길 종주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성수기를 지나 저렴해진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도보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문의 054-730-6195
홈페이지 http://blueroad.yd.go.kr/
요금 무료
오보해변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오보리 26번지 지선
문의 054-730-7122
나옹왕사반송유적지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문의 054-730-6195
장육사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
문의 010-8560-1978
홈페이지 http://jangyuksa.templestay.com/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해맞이길 254-20
문의 054-730-7052
홈페이지 http://www.yd.go.kr/
해맞이공원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산5-5번지
문의 054-730-7052
괴시리전통마을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문의 054-730-6533
고래불해수욕장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 195-7
문의 054-730-7802
바다숲향기마을(펜션)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해맞이길 254-55
문의 054-730-6611
해맞이캠핑장(캡슐하우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해맞이길 254-69
문의 054-730-6337
청송식당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강구대게4길 9-7
문의 054-733-4155
사계절대게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강구대게길 52
문의 054-734-2777
글 김현민 기자
사진 각 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