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보다는 쉽다, 하지만 동영상보다는 덜 쉽다. 오디오북 이야기다. 본능적으로 쉬운 것을 찾는 우리가 ‘덜 쉬운’ 것을 찾는 이유는 뭘까?
라이프스타일 ㅣ 문화
[문화의 향기]
“귀르가즘 트렌드”
오디오북에 반한
디지털 노마드
인류의 역사는 소통의 진보라고 볼 수 있다. 소통 플랫폼을 통해 집단지성을 만들고 공동체는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갔다. 최초에는 서로 통하는 언어를 개발했고, 다음은 문자와 기록을 발명해, 세상에 대한 통찰을 넓혀갔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근래에는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이 더욱 쉬워지고 있다. 플랫폼 기술이 보다 고도화된 것이다. 40년 전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한 대로다. 과거의 농업혁명, 산업혁명보다 지식 정보의 공유 혁명은 훨씬 빠르게 이뤄지는 것을 모두가 목격하고 있다.
‘듣기’를 원하는 인류
요즘 흔한 동영상은 직관적이다. 이해가 빨라, 단박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쉬운’ 동영상이 대세인 가운데, ‘클럽하우스’ ‘오디오북’ 같은 청각형 플랫폼과 오디오 콘텐트가 조용히 성장 중이다.
오디오 콘텐트가 물론 최근의 것은 아니다. 5060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과거 ‘라디오 드라마’가 있었고, 더 오랜 기억 속에는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가 있다. 한창 유행했던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같은 것 또한 그렇다. 오디오북도 사실 ‘TTS(Text to speech)’라 불리는 음성합성 시스템으로 녹음하거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녹음하는 형식으로 과거부터 있어왔다.
오디오 콘텐트가 트렌드가 된 첫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듣기’가 가장 흔하고 오랜 감각이라는 것이다. 청각은 복중의 태아에게도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존재하는 감각이며, 동시에 사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라고 한다. 삶의 시작과 끝에 귀를 열어 놓은 것이 인류다. 몇 만년이나 이어온 버릇이 불과 20~30년 사이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디오 콘텐트들은 우리 몸의 이런 맹점(?)을 포착했다. 흔히 가장 쉽고 직관적인 것(시각)이 더 쾌락을 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결국 몸에 오래 익은 것이 가장 큰 만족을 줄 것이다. 최근에는 흔히 ‘귀르가즘’이라고도 표현한다.
더불어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낼 때 생기는 독서의 쾌락을 유지한 채, 아늑하고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오디오북의 장점이다.
동시수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동영상은 보고 듣는 것을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몰입해야 하지만, 오디오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실제로 운전 중에, 혹은 집안일을 하며 오디오북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4050에게는 보는 책 대신 듣는 책이 점점 더 유용해질 것이다.
셀렙 vs 성우
결국 최근 오디오북 활성화의 가장 큰 배경은 ‘사람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일 것이다. 현재도 TTS를 활용한 오디오북이 많기는 하지만, ‘다양한 이들이 읽어주는 오디오북’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끊이지 않는다.
개인의 기억 속 가장 그립거나 편안한 목소리는 아닐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의 목소리로 들을 수는 있다. 인기 연예인이나 작가 등 다양한 유명인이 참여한 콘텐트는 오디오북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몇 해 전 TV 프로그램 ‘같이펀딩’을 통해 연예인들의 오디오북 낭독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래, 유명인의 육성이 담긴 오디오북이 인기몰이 중이다. 아이돌 멤버가 참여한 콘텐트는 아이돌 팬덤 문화의 영향으로 더욱 인기다. 초기 3040이 주로 향유하던 오디오북이 Z세대에게도 먹히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연예인이 오디오북을 녹음할 경우, 콘텐트 자체가 아니라 연예인이 주제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오디오북 시장이 성숙하면서 일부 마니아들은 전문 성우가 녹음한 오디오북만을 찾는 경우도 있다.
사실 90년대에도 인기 연예인이 목소리로 낭독한 오디오 콘텐트들은 있었다. 오디오북 콘텐트 자체가 오랜 것인 만큼 시도와 실패를 반복해왔지만, 최근의 붐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AI스피커 등의 IT 플랫폼 기술이 발전하며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고, 무엇보다 오디오북이라는 플랫폼 자체에 대한 마니아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기술이 더욱 발전한 미래에는 내 귀에 가장 맞는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맞춤해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네이버는 배우 유인나의 음성을 AI로 합성해 오디오북을 만들기도 했다. 듣고 싶은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골라 듣는 시대가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표 플랫폼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의 규모는 2019년 기준으로 267억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그랜드뷰리서치 ‘2020년 산업 분석 보고서’)한다. 그러나 국내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아직 200억~300억원대로 세계 시장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출판시장 규모가 세계 7~8위권인 것을 감안할 때 앞으로 국내 시장의 성장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밝은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듯, 플랫폼 업체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혜택을 들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윌라’ ‘오디오 클립’ ‘밀리의 서재’는 국내 대표적인 오디오북 플랫폼으로 각자 개성 넘치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윌라>
“오디오북으로 귀깔나게 독서하다”
지성파 배우이자 애독가로 유명한 배우 김혜수가 광고에 출연하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2019년 대한민국 브랜드 만족도 조사에서 ‘지식 콘텐트 플랫폼’ 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징
- 이용자의 취향과 청취 패턴에 최적화된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전문 오디오북 에디터들의 ‘북큐레이션 코너’를 운영한다.
- 기존 오디오북 제작 방식에 풍부한 사운드 디자인과 연출을 더해 이용자에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하는 ‘윌라 시그니처 오디오북’ 서비스를 제공한다.
- ‘윌라 매거진’이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매거진을 서비스한다.
- ‘찜하기/자동재생 시간 설정’ ‘이용현황 확인’ ‘이어 듣기 및 백그라운드 재생’ 등 다양한 UI/UX 편의를 제공한다.
- 오디오북과 별개로 ‘클래스’ 코너를 통해 대한민국 직장인,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해 필요한 경영지식부터 교양 함양을 위한 인문학, 문화예술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의 강연을 제공한다. 쉽게 만날 수 없던 스타급 지식인, 베스트셀러 저자의 콘텐트들이 있다.
<밀리의 서재>
국내 최대 규모의 독서 플랫폼이다. 전자책 기반으로 오디오북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보유한 독서 콘텐트가 10만권에 이른다. 오디오북과 전자책을 비롯한 다양한 독서 콘텐트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특징
- 연예인, 저자, 성우 등이 직접 읽어주는 ‘책이 보이는 오디오북’ 기능이 있다. 오디오북 재생 중에 실제 해당 부분이 전자책에 하이라이트 표시된다.
- 책이 보이는 오디오북’은 책 내용을 요약 발췌해 30~40분 정도 읽어주는 요약형 오디오북으로, 자투리 시간 활용에 편리하다.
- 인공지능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는 ‘완독형 오디오북’도 제공한다.
- ‘내가 만든 오디오북’ 코너를 통해 독자가 직접 완독형 오디오북을 제작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이 만든 오디오북을 3분 이상 재생하면 구독 수익이 발생해 오디오북 제작자에게 돌아간다.
<오디오클립>
대형 포털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국내 가장 많은 오디오북 콘텐트(20,041개)를 제공한다(2021년 6월 기준)
특징
- 소설/시/에세이 등 우리 문학 작품을 작가가 직접 낭독해 들려주는 새로운 형식의 오디오 콘텐트를 선보인다.
- ‘스타 책방’코너를 통해 유명 연예인들이 참여한 오디오북 콘텐트를 제공한다. 사용자 참여형 기부 프로젝트로,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콘텐트 등도 제공 중이다.
- 오디오북뿐만 아니라, 팟캐스트 예능, 오디오 드라마, 오디오 도슨트 등 다양한 오디오 콘텐트를 제공하는 오디오 콘텐트 전문 플랫폼의 기능을 갖고 있다.
글 김현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