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전시소개

Black Point

<Black Point>는 ‘검은색’이라는 절대적 색상에 주목해 동시대 작가들의 감각적 해석과 실험적 태도를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먹의 미학과 색의 철학을 기반으로 회화,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검정이 지닌 사유와 물질성을 탐색해 봅니다.

포스터 이미지
전시명 | Black Point
작가 | 김지민, 박진영, 정성진, 정용국, 최선, 미아우치 유리, 이야나가 유리코
출품작 | 약 40여점
날짜 | 2025.7.4(금)~7.25(금)
시간 | 평일 11:00~18:30, 주말 13:00~18:00(월요일 휴무)
장소 | 하나은행 H.Art1(서울 중구 을지로 167)

우리 주변의 환경은 수많은 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검정’은 여전히 가장 근원적인 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색을 흡수한 끝에 도달하는 검정은 단순한 어둠이나 부재가 아니라 가능성의 총합으로 존재합니다. 선사시대의 벽화부터 현대 추상회화에 이르기까지 검정은 시대를 관통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 속에 소환되어 왔습니다. 특히 동양화의 핵심 재료였던 먹은 단 하나의 색으로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철학적 시각의 상징이었습니다.

<Black Point>는 이처럼 물리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색 ‘검정’을 하나의 개념으로 삼아, 그것이 오늘날의 예술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확장하고 있는지를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검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맥락에서 형성된 작가들의 작업을 새로운 시선으로 엮어 봅니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은 검은색이 상징하는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새로운 시대와 관점에서 공유하며 단순히 ‘검정’이라는 공통의 물리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매개로 한 새로운 실험과 태도, 나아가 행동과 실천을 요청하는 동시대적 감각을 드러냅니다.

작가 소개
김지민
Line of Silence No.126

김지민, Line of Silence No.126, Ink, Metal leaf and Mixed media on Canvas, 162x114cm, 2024

김지민은 영국에서 성장하며 서구 문명과 그들의 고고학에 애착을 느끼는 동시에, 그 과정에 수반된 폭력과 파헤침, 대상화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중간자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전시 안에 다양한 문명의 상징을 섞고, 추상회화와 키네틱 설치를 통해 후대에 쓰인 역사의 부정확성을 이야기하되 재현하지 않는 무대를 구성합니다. 지난 2021년부터 회화, 조각, 사운드, 퍼포먼스 등을 무대기술과 융합하여, 다양한 예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진 형태의 설치 작업으로 특정한 장소를 몰입형 가상 공간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박진영
첫돌(국립묘지)

박진영, 첫돌(국립묘지), Gelatin silver print, 45x32cm, 2001

박진영은 파노라마 카메라와 대형 카메라를 이용하여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개인의 일상을 통해 기록해 왔습니다. 다큐멘터리 저널리즘에 기초한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언뜻 평화로워 보이나 사회적 상흔이 새겨진 시대의 아픔, 남루하고 비루한 현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는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의 상황을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자연재해를 시작으로, 사회적 혼란, 정치적 파장,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 등 복잡하고 지속적인 형태의 재난들을 직접적이기보다 일정한 거리와 시차를 두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정성진
Cave

정성진, Cave, 3D animation, sound, 5 minutes 34 seconds, 2023

정성진은 무의식적 감각의 세계를 어떻게 하면 물리적 실체로 끌어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무의식의 개념을 조형화하기 위해 어떤 결과를 추구하는 대신 만들어지는 과정의 우연성에 집중합니다. 도시나 공간의 일부를 3D 데이터로 만드는 과정에선 정보가 탈락하고 추상화되며 그것을 다시 종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물성으로 끄집어냅니다. 데이터와 실재 간의 순환 과정에 불완전한 의식과 감정을 투영시키는데, 이것을 우리의 삶과 예술적 태도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정용국
Flow

정용국, Flow, Ink on Korean paper, 69x68cm, 2020

정용국은 한국화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주제인 ‘서사로서의 죽음’을 식물처럼, 혹은 신체 기관을 이용해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먹의 물성을 강조하기 위해 잉크 토너를 대체하여 사용했고, 보이지 않는 대상인 속도나 연기 또한 포착해냈습니다. 또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전시장 벽에 붓과 먹을 사용해 수만 자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은 전통적 형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긍정이면서 동시에 부정의 징후로 읽힙니다.

최선
Butterfly

최선, Butterfly, blue ink on canvas, 360x63inchx6ea, 2014

최선은 미술의 사회적 의미,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한 다양한 작업을 선보입니다. 사회에 공유된 의식 속 첨예한 대립점에 놓인 주제들을 탐구하고, 동시대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도록 돕는 작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관심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우리가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이슈들로 확대되는 작업들은 과거에서 출발하지만 현재까지 유효하게 작동합니다.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 속에서 발견된 주제들이 과거에 걸쳐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미아우치 유리
sound score M.2

미아우치 유리 SS. sound score M.2, Ink-jet print, Akrylic board, 588mmx999mm, 2023

미아우치 유리는 오키나와와 런던에서의 활동을 거쳐 현재는 요코하마를 거점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특히 피부 감각이나 내장 감각처럼 신체를 통해 느끼는 감각에 주목하며, 우리가 모두 경험하지만 결코 완전히 인지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이러한 감각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혹은 외면하는지를 질문합니다. 작업 과정에서는 거즈, 엽서, 소리, 흙, 레진, 로봇 팔 등 이질적인 재료들을 중첩시키는 구성 방식을 통해 작품을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야나가 유리코
IMG fish

이야나가 유리코, IMG fish, acrylic board, PVC sheet, plaster, circular monitor, resin molded net, PVC board, reflector, 300×150x300 mm, 2024

이야나가 유리코는 평생을 살아온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를 통해서만 구현 가능한 독특한 질감, 예를 들어 픽셀 단위로 그릴 수 있는 능력이나 표면의 요철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 주목하며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회화적 관점에서 출발해,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제작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드러냄으로써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최근에는 모니터나 마더보드와 같은 컴퓨터의 물리적 특성에도 주목하고 있으며, 회화적이면서도 입체적인 구성, 설치적인 양상 등 장르의 구분을 넘는 표현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editor _ 이호준(상업화랑 전시기획팀)

게시일: 2025.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