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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노후 인터뷰

서울을 걸으며,
삶을 나누다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

2026.09.18

28년간 몸담았던 화학회사에서 임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것은 2014년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라면 그 자리에서 여행과 골프로 여생을 채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는 몇 달 만에 다시 배움의 자리로 돌아와,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 도전하고 이내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로 자리를 옮겨 궁궐과 골목을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숲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 자격까지 취득해 배움과 봉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가족과 자신, 이웃을 위해 고르게 나누며 살아가는 최경무 해설사. 그에게 은퇴는 익숙한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발맞춰 걷기 시작한 인생 2막이었습니다.

Q. 독자분들께 먼저 자신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

A. 올해로 10년째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경무입니다. 미국계 화학회사에서 28년간 근무하다 2014년 임원으로 퇴직했습니다. 은퇴 후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을 취득해 1년가량 활동했고, 이후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로 전환해 경복궁과 창덕궁, 청계천과 인사동, 북촌과 서촌, 낙산과 남산 성곽길까지 서울 곳곳을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숲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 2급 자격까지 취득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은퇴 후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

A. 2014년 은퇴하고 처음 몇 달은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행도, 골프도 하루이틀이지 계속할 수는 없더라고요. 뭔가 소속감을 갖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며 쌓은 영어 능력을 활용할 곳을 찾다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 도전했습니다. 국사, 관광자원, 관광법규 등 필기시험을 거쳐 영어 면접까지 치러야 하는데, 범위가 워낙 넓어서 까다로운 시험이었습니다. 학원에 다니며 1년을 준비한 끝에 자격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Q.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하시다가 문화관광해설사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어떤 이유였나요?

A. 자격증을 따고 실제로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했는데, 1년 만에 그만뒀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새벽같이 인천공항에 나가 손님을 맞고 밤늦게 끝나는 일정이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고, 또 하나는 함께 활동하는 동료 대부분이 제 자식 같은 젊은 친구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누가 뭐라 한 적은 없지만, 본의 아니게 그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관광통역안내사가 노력한 만큼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문화관광해설사는 교통비와 식사비 정도를 지원받는, 봉사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지원하기 전에 다른 해설사들의 도보 관광 코스를 10여 차례 따라다니며 어떻게 활동하는지부터 미리 살펴봤습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먼저 현장에 참가해 보라고 권합니다.

Q. 선생님만의 은퇴 후 원칙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원칙인가요?

A. 은퇴하면서 제 시간의 3분의 1은 봉사활동에 쓰겠다고 스스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머지 3분의 1은 헬스나 공부처럼 저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또 다른 3분의 1은 손주까지 챙기는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철칙이 하나 더 있는데, 하루 한 끼는 무조건 집 밖에서 먹는다는 것입니다. 아무 일정이 없어도 도서관이든 어디든 나가서 사람들 틈에 있으려고 합니다. 은퇴 후에도 소속감은 정말 중요합니다. 내일 만날 손님을 생각하면 설레고, 그 설렘이 마음의 안정을 줍니다.

Q. 문화관광해설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

A. 몇 해 전 경복궁에서 해설하던 중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각각 온 젊은 여성 두 분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한국까지 왔느냐고 물었더니 K-팝 팬이라고 하더군요. 아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BTS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BTS 데뷔 1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아온 팬들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영국 유학 시절 만나 결혼한 프랑스인 남편과 중국인 아내, 역시 영국에서 만나 가정을 이룬 나이지리아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가족, 허니문으로 한국을 택한 스페인 신혼부부까지, 국적도 사연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동료들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라떼는 말이야’라며 훈수 두지 말고, ‘고맙다’고 말해 주자고요. 전 세계를 사로잡은 K-팝과 K-컬처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 젊은 세대들이니까요.

Q. 해설할 때 특별히 지키는 원칙이 있으신가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의 정확성이지만, 제가 세운 원칙은 ‘고객 위주로 즐겁게’입니다. 해설사가 열 가지를 안다고 열 가지를 다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손님이 그걸 다 기억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거나 가벼운 퀴즈도 내면서 참가자들과 눈을 맞추려 합니다. 해설이 끝난 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전체적으로 즐거웠다’는 인상만 남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 숲해설가, 산림치유지도사 자격까지 잇따라 취득하셨습니다. 배움을 이어 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

A. 사실 자격증을 따는 것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궁금한 걸 하나씩 알아 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궁궐을 해설하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나무들이 궁금해져서 숲해설을 공부하게 됐고, 지금은 경기 오산의 물향기수목원에서 5년째 숲해설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산림치유지도사라는 자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화학공학과 출신이라 자격 요건을 채우려 방송통신대 농학과 3학년에 편입해 2년을 공부했습니다. 요즘은 명상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날 때가 있는데, 그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서 책과 강의를 찾아보며 배우는 중입니다.

Q.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

A. 문화관광해설사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도보 관광 코스를 다니다 보니 하루 두세 시간씩 걷게 되는데, 그것만으로 적당한 운동이 됩니다. 매일 밝은 표정의 손님들을 만나 해설하다 보면 제 마음도 정말 즐거워집니다. 관광통역안내사, 문화관광해설사, 숲해설가, 산림치유지도사 모두 자격증만 따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꾸준히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공부해야 하는 일입니다. 은퇴 후에도 소속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아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A. 특별히 새로운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꾸준히 이어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화관광해설과 숲해설 봉사를 계속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명상도 조금씩 제 것으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저는 표창을 받거나 기사에 실릴 때마다 자녀들에게 ‘너희들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다음 세대가 잘 자라 주었기에 저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니까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나누는 삶입니다.

editor. 정애영(프리랜서 기자)

photo. 홍하얀(프리랜서 촬영기사)

※ 본 콘텐츠는 한경매거진앤북에서 제공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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